POESIEGESPRÄCH: YI WON
Ich klicke ständig auf die Welt

Yi Won

Yi Wons (geboren 1968 in Hwaseong, Gyeonggi-do) Gedichte entführen die LeserInnen in eine surreale Welt mit monströsen Körperphantasien. Es sind dystopische Fieberträume, in denen Mensch und Maschine miteinander verschmelzen, transplantierte Glasfaserelektroden drahtlos Signale in die Welt senden und kybernetische Organismen das Schreiben und Rezensieren von Gedichten übernehmen.

Poesiegespräch in deutscher Übersetzung

Poesiegespräch im koreanischen Original

Simone Kornappel: 시인님의 시가 한 손으로 잡아서 무언가를 꺼낼 수 있는 하나의 상자라고 가정한다면, 무엇이 안에 있다고 생각하십니까?

Yi Won:‘흰 종이로 접은 작은 새’입니다. 꺼내는 동작에 따라, 간명한 뼈도 만져지는 그런 새입니다. 꺼내는 손에 눈이 가려지면 ‘더 캄캄함’에 머무를 수 있는 새입니다. 

Simone Kornappel: 시인님의 시에는 자주 “공허”라는 단어와 그에 해당하는 개념이 자주 등장하고, 또 문장의 구조도 최소한의 성분도 다른 행, 혹은 나아가 다른 문단에 쓰여져 있는 것을 발견 하였습니다. 그에 따라 처음에 하나의 의미로 보이던 단어가, 혹은 전체의 시의 맥락을 또다른 의미 혹은 많은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더듬어 나아가듯 느껴졌습니다. 저의 이러한 느낌은 맞는 건가요? 정말 시인께서 시를 쓰실 때 많은 의미를 함축하여 시를 쓰셨나요?

Yi Won: 정서적으로 비어 있음을 뜻하는 ‘공허’가 아닌, 시각적으로 비어 있음을 뜻하는 ‘허공’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있습니다. 계단과 옥상을 존재하게 하는 공간을 허공이 갖고 있습니다. 저는 허공을 계속 발견하고 싶습니다. 허공은 ‘추상’이 아니라 ‘구상’이라는 것을 더 많이 경험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시를 쓸 때 감각을 따라가고, 비약되는 부분을 의도적으로 채우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풍경의 전체가 드러나지 않는 경향이 있습니다. 특히 정서적 층위가 개입되는 시들은, 해석이나 감각이 되지 않은 부분들을 비워 두는 편입니다. 그 편이 솔직한 제 리듬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의미보다는 감각의 동선을 우선시하는데요. 결과적으로는 선생님께서 느끼신 대로, 의미의 함축, 겹침, 확장으로 읽히게 되는 것 같습니다. 

Simone Kornappel: 순간과 최소, 이 두 가지 요소를 시인의 글로써 혹은 시인의 시로써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Yi Won: 순간은 나타나는 1초 같은 것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겠습니다. 최소는 1초 안의 ‘최초’입니다. 1초가 발화된 지점, 다 없어져도 안 없어지는, 즉 원형 같은 것입니다.
1초의 불 안에는 불이 켜지게 하는 최소가 들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에서, 순간과 최소는 어쩌면, 뒤늦게, 어긋나게 나타나는 지점의 포착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우리가 뒤늦은 빛을, 오지 않을 수도 있는 빛을 ‘후렴’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 노래는 계속 들려올 수 있고, 이 노래는 또 다른 노래를 포함하고 있는 1초일 것입니다

Simone Kornappel: 어떤 순간이나 기회에 시인의 시가 바뀌었거나, 혹은 더 이상 써지지가 않았다 거나 혹은 시를 쓴다는 것 자체가 지긋지긋한 경험이 있으셨나요?

Yi Won: 개인적으로는 13년 전 스승의 죽음, 그리고 6년 전 <세월호 참사>라는 공동체의 비극, 이 두 경험이 제 시에 큰 변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제 관점이나 인간적 관점이 우선하는 시를 쓰고 싶지 않았기에 1인칭의 개입을 하지 않았었습니다. 그런데, 이 두 경험은 방식을 생각할 틈도 없이, 휘몰아친 소용돌이였습니다. 저절로 그 안으로 들어가게 되었고 1인칭으로 발화하게 되었습니다. 

시를 쓰는 것은 늘 어렵습니다. 멈추기도 하고 써지지 않는 순간들도 많습니다. 그러나 늘 결론은 제 등불을 시로 켜고 싶고, 그러기 위해서는 제 안에서 성냥을 찾는 행위를 반복적으로 합니다. 시라는 성냥으로 등불을 켰을 때 제 스스로가 제일 마음에 듭니다.

Simone Kornappel: 시인의 시에 영향을 줄 작가는 누구 인가요?

Yi Won: 저는 1930년대 시인 이상, 1960년대 시인 오규원, 1980년대 시인 김혜순에게서 영향을 받았습니다. 이상에게서는 직시와 유니크를, 제 스승이기도 한 오규원 시인에게서는 방법론과 언어의 정확성을, 김혜순 시인에게서는 다른 발화 방식과 치열성을 배웠습니다.

Simone Kornappel: 시집이나 문학잡지에 기고할 시를 탈고하고 나서 막 초판 시집이나 잡지를 받아보았을 때 바로 훑어보십니까? 아니면 일단 두고 천천히 보십니까?

Yi Won: 일단 두고 천천히 봅니다. 날아간 새가 다시 돌아오는 날을 기다리는 심정과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보고 싶었던 새는 금방 또 날아갑니다.

Simone Kornappel: 시를 쓰는 순간에 살아 있음을 느끼십니까, 아니면 시를 탈고한 뒤 에야 비로소 생동감을 느끼십니까? 보통 시 한 편을 한 번에 다 쓰시는지 아니면 두고두고 쓰시는 지도 궁금합니다.

Yi Won: 앞쪽에 해당합니다. 순간 전체가 아닌 ‘순간 중 어느 한 순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저도 모르는 문장을 썼는데, 그 문장에서 이 세상과 닿아 있음을, 이 세상에 제가 온 이유 같은 것을 느낄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의 신비가 제가 계속 시를 쓰는 이유일 것입니다.

시에 따라 다르지만 두고 두고 쓰는 편에 속합니다. 느낌으로부터 형체를 찾는 방식으로 쓰는 편입니다. 마치 커다란 바위에서 얼굴을 꺼내는 조각가의 방식에 가깝습니다.
시에 따라 다르지만 두고 두고 쓰는 편에 속합니다. 느낌으로부터 형체를 찾는 방식으로 쓰는 편입니다. 마치 커다란 바위에서 얼굴을 꺼내는 조각가의 방식에 가깝습니다. 

Simone Kornappel: 시인님의 시는 몇 개국어로 번역되었습니까? 어떤 나라말이었나요? 번역본을 볼 때 시인님은 어떤 느낌을 받으시나요? 시인의 시는 제가 느끼기에 매우 정확한 번역을 요하기에 이런 궁금함이 생겼습니다.

Yi Won: 번역을 끝낸 영어 시집이 미국에서 나올 예정입니다. 이와는 별도로 출간된 것은 아니지만, 다른 분들의 영어 번역이 있습니다. 네덜란드 번역이 있고, 여러 나라 언어로 제 시가 번역되는 워크숍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번역의 결과를 볼 때, 정서, 환경에 따른 간격을 느낄 때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번역은 춤 같은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닮아 있으면서도 또 다르게 이어지는 춤을 보는 기쁨이 있습니다.
이번에 선생님께 보내드린 시들은 주제에 부합되는 시들을 고른 까닭으로, 관념성과 파편화된 이미지가 많은 시들입니다. 저는 선생님과 제 사이에 존재할 ‘거울의 춤’을 기대합니다. 

Simone Kornappel: 시인께서는 산문도 쓰시는 것으로 알고 있는데, 장르가 다른 것은 별개로 하고 작가로서 어떤 차이점이 있나요? 

Yi Won: 저의 경우, 시와 산문은 다른 작동 원리를 갖습니다. 시는 보이지 않는 것에도 닿아야 써집니다. 규정을 벗어났다고 느낄 때 자유로워집니다. 반면에 산문은 현실이 적극적으로 수용됩니다. 시를 쓸 때는 발이 땅에서 떨어지고 산문을 쓸 때는 땅에 붙은 발을 인식한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습니다. 시를 쓸 때는 무중력을 느끼고, 산문을 쓸 때는 중력을 느낍니다. 

Simone Kornappel: 보통 사회 관념상 시인에게 기대되는 어떤 모습이나 특징들이 있는데, 시인으로써 그러한 기대에 부합하지 못하거나 혹은 그런 전형화에 순응하고 싶지 않는 점이 있으십니까?

Yi Won: 시인에 대한 고정관념적 시선에 대해서는 크게 신경 쓰지 않는 편입니다. 즉 제 방식의 태도를 견지하는 편입니다.
다만, 시가 세상에 기여할 수 있는 부분에는 일종의 책임감을 갖고 있습니다. 거창한 얘기는 아니고 새로운 느낌, 작은 기쁨, 일종의 작은 등불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시인도 시민이니까 제 스스로 굳지 않으려고, 스스로 전형화되지 않으려고, 제 안에 대고 천진과 유머를 자주 물어봅니다. 

Simone Kornappel: 시인께서 생각하실 때 시라는 것은 이해할 수 있는 것일까요 혹은 이해하고 싶은 것일까요?

Yi Won: 시는 이해보다는 소통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소통이 느낌의 즉각적 공유라고 한다면, 이해는 사후적으로 해석이 개입되는 상태입니다. 그러므로, 시는 이해 이전에 소통, 즉 언어화 되기 이전의, 느낌의 공유가 일어나는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해석은 안되는데 느껴지는 무엇이 있다면, 그것은 시를 경험하게 된 것이 아닐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Simone Kornappel: 어떤 한국의 시인을 독일의 문학계에 추천하시겠습니까? 그 이유도 궁금합니다.

Yi Won: 이미 독일에도 알려져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만 김혜순 시인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김혜순 시인은 논리와 비논리를 가로지르는 특유의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김혜순 시인과 동시대 시인인, 최승자 시인을 추천 드리고 싶습니다. 불에 데인 듯한 뜨거운 언어를 가지고 있습니다. 두 시인의 시세계는 비유적으로 말씀드린다면, 독일의 표현주의 회화의 심연과 닮아 있습니다. 

Simone Kornappel: 어떤 시인은 본인의 시가 평소에 시인 본인의 말하는 스타일이나 의사 소통하는 방식과 매우 비슷한 경우가 있습니다. 시인께서 생각하실 때 만약 저희가 서로 만나 이야기를 한다면 시인님의 시에서와 같은 표현 혹은 의사소통의 방식을 제가 알아차릴 수 있을까요?

Yi Won: 30분 정도 지나면 그러실 수 있으리라고 생각합니다. 저의 경우에는 말이나 의사소통의 방식과 시의 표현 방식이 일치하지는 않습니다. 제 시는 함축하려고 하고 제 말은 설득하려 합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는 제 시 에서와 같은 의사소통방식을 만나게 되실 것입니다. 제 말과 제 시는 미끄러지는 지점에 있으나, 같은 방향을 향하고 있기 때문입니다.